공자(孔子)가 현대인에게 말하는 인간관계의 본질: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바라지 말라

1. 공자 ( 孔子 ) 가 설파한 인간관계의 본질 공자 ( 孔子 ) 가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에서 출생하여 평생 교육과 저술에 노력한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 공자가 설파한 사상은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널리 퍼져 유교라는 위대한 사상체계 , 생활규범이 되어 현재에도 강력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 공자는 춘추시대라는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설정함에 대하여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명언을 다수 남기고 있습니다 . 공자가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나눈 수많은 대화중 위령공편에 나오는 이 문구는 현재 에도 회자되는 유명한 문구입니다 . 공자는 말합니다 . 기소불욕 ( 己所不欲 ) 물시어인 ( 勿施於人 ) 이라고 이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바라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 사람 인 ( 人 ) 자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누구나 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사람은 어떠한 누군가와 만나고 대화하고 서로의 의사를 주고 받으며 나아가 서로간의 필요에 의하여 물물교환하듯이 정보 , 시간 , 물품 , 애정등 감정등을 주고 받습니다 . 이를 인간세계에서 교류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가요 . 타인과의 교류에서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과 교류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어떠한 형태를 불문하고 각자 자신이 얻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 그러나 수많은 교류에 있어 암묵적이던 명시적이던 지켜야 할 원칙아닌 원칙이 존재합니다 . 사람들간의 교류는 어느 일방의 의사에 의하여 강제로 행하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 마치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한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교류가 되려면 상대가 되는 사람의 어느 정도의 호응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 물론 상대의 의사와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행하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는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는 형태의 폭력이나 강제등이 수반되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 이러한 형태의 교류가 가능한 존재는 명령복종의 관계가 절대적으로 존...

랭보(Rimbaud)의 취한 배((Le Bateau ivre)에서 나타난 랭보의 내면세계

1. 랭보(Rimbaud)의 시

나는 무감각한 강물을 따라 내려갔을 때

더 이상 나를 이끄는 뱃사공을 느끼지 못했다.

떠들썩한 붉은 피부의 원주민들이 그들을 목표삼아

색깔있는 기둥에 그들을 발가벗겨 묶어두었던 것이다.

 

나는 별에 씻기고 우윳빛으로 비치는 바다의 시속으로 들어갔다.

푸른 하늘을 게글스레 삼키고

때때로 창백하고 사색적인 익사체가 떠내려가는 곳

 

내가 유럽의 물을 바란다면

그것은 검고 차가운 웅덩이, 향기로운 황혼에

슬픔에 잠긴 웅크린 아이가

오월의 아이처럼 연약한 배를 띄우는 곳

랭보(Rimbaud)의 시 취한 배(Le Bateau ivre)’에서 일부 발췌함

2. 랭보(Rimbaud)의 내면의식세계에 표현된 당대사회에 대한 인식

랭보(Rimbaud)의 취한 배(Le Bateau ivre)는 랭보가 17세에 쓴 장편의 서사시로 그가 살고 있었던 프랑스사회, 나아가 유럽이라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싯구이다. 그가 17세에 이러한 싯구를 쓴다는 것은 그의 천재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으로 이에 대한 찬사는 당대 프랑스문단에서 조차 놀라워했다. 이 시에서 그가 그의 내면에서 일고 있는 프랑스사회와 유럽 전체에 대한 인식이 그가 내면세계에서 심각한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사춘기에 접어들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가 그의 내면세계에서의 흔들리는 의식을 그가 혼자만의 독창적인 언어적 수사로 담담히 써내려갔다는 점에서 그의 언어구사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시 제목이 취한 배(Le Bateau ivre)라는 점에서 자신을 상상속의 취한 배로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사회라는 나아가 유럽이라는 사회전체에 들어가는 17세인 사춘기시절의 자신이 무감각한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여정을 통하여 그가 살았던 프랑스사회, 유럽사회에 진입하는 여정을 담담히 그만의 으식의 흐름에 따라 언어적 유희로 표현하고 있다. 100여행에 이르는 그의 시에서 이 구절은 바로 그의 시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한 당대 프랑스사회와 유럽사회에 대한 그가 내면에 숨기고 있던 그만의 인식을 그대로 여과없이 나타내는 point이다.

3. 랭보(Rimbaud)가 인식한 당대 프랑스, 유럽사회

그러하다면 17세인 사춘기에 접어든 랭보가 바라본 그만의 내면세계에 나타난 당대 프랑스 사회 내지 유럽사회는 어떠한 것일까. 그가 프랑스사회, 유럽사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무감각한 강물을 따라 내려갈 때 나를 이끄는 뱃사공을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그 뱃사공을 떠들썩한 붉은 피부의 원주민들이 그들을 목표삼아 색깔있는 기둥에 그들을 발가벗겨 묶어두었던 것이라고 하였다. 랭보가 강물을 따라 내려갈 때 그를 이끈 뱃사공을 랭보(Rimbaud)떠들썩한 붉은 피부의 원주민들로 표현되는 사람들이 뱃사공을 그들이 바라는 대로 색깔있는 기둥에 그들을 발가벗겨 묶어두었던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랭보가 말하는 떠들썩한 붉은 피부의 원주민들은 랭보가 살고 있는 프랑스 사회 내지 유럽사회가 백인들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인 붉은 피부의 원주민로 표현되는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들에 의하여 랭보가 강물을 따라 가고자 하는 바다에 이르게 하는 뱃사공이 뱃길을 안내하지 못하게 하는 색깔있는 기둥이라는 그들을 발가벗겨 묶어두었던 것인 족새를 채워 뱃사공조차 랭보에게 바다로 이르게하는 역할조차 하지 못하게 한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싯구에서 랭보(Rimbaud)는 자신이 프랑스사회 내지 유럽사회라는 정상적인 바다에 강물을 따라 자신이 가는 여정에 자신을 도와줄 뱃사공으로 표현되는 여정의 안내자 조차 프랑스사회, 유럽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이들이 뱃사공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한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싯구에서 랭보가 바라보는 당대 사회는 강물이 따라 바다에 이르기전 자신을 이끄는 안내자인 뱃사공으로서의 역할을 차단하게 한다는 것은 랭보가 생각하는 사회로의 진입을 하게 하는 건전한 안내자들 조차 배척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사회로 회생할 수 있게 해주는 안내자조차 배척하는 사회라는 인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랭보(Rimbaud)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다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생각한 바다는 랭보(Rimbaud)가 회생불능이라고 바라본 당대 프랑스사회, 유럽사회에 대비하여 그만이 생각한 바다인 가상의 공간인 바다로 들어간 것이다. 이는 랭보가 별에 씻기고 우윳빛으로 비치는 바다라는 곳이다. 그가 내면으로 인식하고 있는 바다는 별에 씻기고 우윳빛으로 비치는 바다라는 매우 낭만적인 풍경으로 여기고 있는 곳이다. 17세 소년이자 사춘기에 접어든 랭보(Rimbaud)가 바라는 프랑스 사회, 유럽사회는 그가 바라는 별에 씻기고 우윳빛으로 비치는 바다이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사춘기소년다운 발상이자 희망인가. 마치 윤동주시인의 별을 헤이는 밤을 노래한 것과 같은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으로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바다는 전혀 그러하지 않았다. 랭보(Rimbaud)가 바라보는 당대 현실의 프랑스사회, 유럽사회는 푸른 하늘을 게글스레 삼키고 때때로 창백하고 사색적인 익사체가 떠내려가는 곳이라는 푸른 하늘을 게글스레 삼킬 정도로 전혀 낭만과 거리가 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사회전체의 행복과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비정한 사회이며 때때로 창백하고 사색적인 익사체가 떠내려가는 곳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내는 사회적 극심한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 사실상의 익사체로 현실의 사회에서 둥둥 떠다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랭보(Rimbaud)가 바라보는 당대 사회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비인간적이고 매우 비정한 사회로 보고 있다. 랭보의 인식을 당대 프랑스사회, 유럽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내지 반항으로 볼 수 있다. 랭보(Rimbaud)의 시에 대한 비평가들의 대체적인 인식이 랭보의 당대 사회에 대한 반항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 점에 다소 의미가 있다. 문제는 랭보가 바라본 당대사회를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고 하여도 이에 랭보는 그대로 절망하고 한 것인가이다.

3. 랭보(Rimbaud)가 희망하는 프랑스, 유럽사회

랭보(Rimbaud)가 바라본 당대사회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랭보가 이에 대하여 절망하고 있는가에 대한 랭보(Rimbaud)의 대답은 다음에 있다. ‘내가 유럽의 물을 바란다면에서 유럽이라는 바다가 검고 차가운 웅덩이이지만 향기로운 황혼에 슬픔에 잠긴 웅크린 아이가 오월의 아이처럼 연약한 배를 띄우는 곳이라는 표현에서 랭보는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바라고 있다. 랭보(Rimbaud)가 당대 프랑스사회, 유럽사회를 푸른 하늘을 게글스레 삼키고 때때로 창백하고 사색적인 익사체가 떠내려가는 곳이라고 바라보고 있어도 비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여도 향기로운 황혼에 슬픔에 잠긴 웅크린 아이로 표현되는 당대사회에 절망하고 있지만 그래도 당대 사회를 믿고 별에 씻기고 우윳빛으로 비치는 바다로 랭보(Rimbaud)가 표현하는 모두가 행복하고 인간답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어린 기대를 하고 있다.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왜 향기로운 황혼에 슬픔에 잠겨 있는가. 당대 프랑스, 유럽사회가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러할 가능성에 희소하다는 점에서 절망을 하고 있을 것이다. 랭보(Rimbaud)가 보기에 이들을 이렇게 보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절망속에서 조그마한 희망을 보고 있는 사람들로. 그러나 이들도 거대한 현실앞에서 나름대로 기지개를 펴지 못하고 거대한 대중의 시선속에서 바짝 웅크리고 있다는 점이다. 웅크리고 있어 조금이라도 꿈틀거리지 못하는 형국이다. 랭보(Rimbaud)가 보기에 이들이 매우 가련하고 안타까운 존재라고. 과연 랭보(Rimbaud)는 이들이 바라는 바다 즉 당대 프랑스, 유럽사회가 어떠한 존재이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오월의 아이처럼 연약한 배를 띄우는 곳이라고 보고 있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으로 1년중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따뜻한 훈풍이 불어 사람들이 살기에 좋으며 만물이 활짝 소생하는 활기찬 시기이다. 오월에 있는 아이는 사람이 살기에 좋고 행복에 넘치는 시기에 아이는 더욱더 바라보는 희망어린 시기일 것이다. 랭보(Rimbaud)가 표현하는 오월의 아이는 당대 프랑스, 유럽사회가 모두가 행복하게 만물이 생동하여 활기차게 근심, 걱정이 없는 사회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아이는 그가 살아갈 인생에서 희망에 부풀어 오는 시기이다. 이처럼 랭보가 표현한 오월의 아이는 당대 프랑스, 유럽사회 사람들이 이러한 존재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인 것이다. 랭보가 강물을 따라 바다로 갈 때 뱃사공을 색깔있는 기둥이라는 목적에 묶어버린 떠들썩한 붉은 피부의 원주민들이 아닌 앞날의 희망어린 사람들이었으면 그의 내면에서 바라는 사람들이다. 비록 현실의 사람들이 그러하지 않지만. 그러나 현실의 바다인 검고 차가운 웅덩이향기로운 황혼에 슬픔에 잠긴 웅크린 아이가 오월의 아이처럼 연약한 배를 띄우는 곳이라는 표현으로 현실의 바다를 희망어린 바다로 바꿀 수 있는 강력하고 매우 튼튼한 배를 띄울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며 비록 아이(Un Enfant)가 만들었지만 연약한 배라고 띠울 수 있는 바다를 바라고 있다. 랭보(Rimbaud)는 현실사회를 바꿀 수 없음을 알면서 이에 절망하지 않고 오월의 아이가 연약한 배를 뛰우는 것처럼 연약하지만 이에 대한 희망어린 기대를 하면서 바다에 띄우는 것에 가느다란 희망을 걸고 있다. 이처럼 랭보는 때때로 창백하고 사색적인 익사체가 떠내려가는 곳인 엄혹한 현실에서 조그마한 희망을 기대하고 있다.

4. 랭보(Rimbaud)는 왜 자신을 취한 배(Le Bateau ivre)’라고 한 것인가

랭보(Rimbaud)가 바라본 당대 프랑스, 유럽사회가 때때로 창백하고 사색적인 익사체가 떠내려가는 곳이며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인 떠들썩한 붉은 피부의 원주민들이 절망어린 사회를 살아가게 하는 사회에서 정상적인 상태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살기에 매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살기에 매우 힘든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현실을 외면하고 소위 사회를 등지고 살아가거나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취한 상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를 외면하지 않고 현실사회속에서 살려면 어느정도 취한 상태가 되어야 엄혹한 현실을 마주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랭보(Rimbaud)는 자신을 강물을 따라 바다로 가는 배라는 인생의 여정에서 정상적인 상태의 배가 아니라 취한 상태의 배라는 것을 상정한 것이다. 이는 랭보가 가진 놀라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알콜에 취해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랭보(Rimbaud)가 표현하는 취한 배(Le Bateau ivre)는 자신이 마주 하고 싶지 않은 엄혹한 당대 프랑스, 유럽사회의 현실을 마주하여야 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책일 것이다. 자신이 취하지 않고서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을 마주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우리의 사회가 술을 권하는 사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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