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의 시 ‘와사등’에서 본 근대 이미지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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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광균의 시 '와사등' 에 나타난 김광균의 시 세계
김광균은 1930년대 한국에서 활동한 모더니즘시인의 대표자로 도시생활이 시작되는 시기에 도시에 사는 지식인들이 고독하고 허무한, 그리고 그의 시가 와사등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신호등이 주는 방향성에 따라 무작정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존재 그 자체가 방향성이 없는 인생행로를 그리고 있다. 김광균은 1930년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Ezra Pound등의 모더니즘의 시대적 세례를 받은 시인으로 그 시대에서 보여지는 도시화의 그늘에서 보여지는 허무함을 그 스스로가 체득하며 간직한 감상등을 와사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 보여지는 와사등은 당시 도시인 도회지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가스등을 음차한 표현으로 와사등으로 나타나는 근대적인 문명으로 다수가 공동작업, 서로 의지하는 생활으로 표현되는 농촌사회에서 서로 낯선 사람들이 서로가 모른 채하면 살아가는 도시화의 물결에서 나타나는 비인간적이고 허무함, 신호등이 가르쳐주는 대로 갈 수밖에 없는 방향성을 잃은 현대인들의 군상을 언어를 매개로 한 회화를 그리고 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언어로 표현하고자 작법인 이미지즘을 차용하여 그가 살고 있던 시대의 생활상을 그의 내면에 들어온 감각들을 그리고 있다.
2. 와사등에서의 김광균의 내면세계
* 김광균의 와사등은 그의 이미지즘의 형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한폭의 단색화로 보여진다. 그의 시 도입부인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있다’ 는 표현은 바로 그가 이미지즘의 작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가 그의 길을 가는데 가로막는 신호등이 마치 빈공간인 하늘에 걸려 있다.
* 이어 등장하는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로 표현되는 작가의 마음은 자신의 의지대로 가는 것이 아닌 신호등이 가르키는 대로 가야만 하는 의지의 상실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무기력함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 ‘긴 여름해 황망히 나래접고’에서 작가가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자신이 그대로 흘러가는 듯한 상실감과 문뜩 문뜩 깨달아가는 시간속의 순간에 놀라 후다닥 움직이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기나긴 여름해의 황망함에 빗대어 나타내고 있다. 바쁘게 기계처럼 돌아가는 도시생활속에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지나가더라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지나가는 도시생활의 황망함을 그리고 있다.
* 김광균은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양 헝클러진채’라는 싯구에서 자신이 추구한 이미지즘의 극적인 표현을 보여준다. 작가의 눈에서 도시화로 들어선 고층건물들이 마치 쓸쓸한 들판에 있는 묘석과 같이 줄지어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도시화로 화려한 문명의 존재인 고층건물들이 아무도 찾는 자가 없는 묘석들과 같이 황량하게 여겨져 근대화라는 문명이 인간소외의 하나로 작가는 그의 가슴에 새기고 있다. 고층건물들이 밤이 되어 화려한 야경을 뽐내고 있지만 야경들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와 같이 작가의 눈에 의미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음을 드러낸다. 잡초는 그가 생존하기 위하여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듯이 도시화로 인한 고층건물이 내뿜는 야경은 야경 그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생존경쟁에 시달리는 도시민들의 생존을 위한 무수한 몸부림으로 보고 있다.
* 작가는 ‘성냥곽 같은 오막살이들 그속에선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들’에서 고층건물과 이의 야경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화려한 형태로 서 있는 고층건물이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닌 단지 생존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성냥곽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마치 농촌시대 사람들이 기거하던 오막살이에 불과하고 그 속을 다니는 사람들은 그의 존재와 의미들을 그 스스로 감춘채 움직이는 그림자와 같다고 하는 것은 마치 Ezra Pound의 시 ‘지하철’에서의 군중들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에 작가는 고층건물과 화려한 야경으로 대변되는 근대화의 물결에 스스로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 작가는 표현한다. ‘어둠속에 등블은 하나 홀로 거러 후두둑 후두둑 비를 맞는다’로 어둠속에 빛나는 존재인 등불은 사람들이 등불로 인하여 밤을 밝히고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알지 못한무심히 지나가지만 등불은 그 자체로 홀로 그 자리에 서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에 대하여 고마움을 나타내지 않고 이르 모르는 존재인양 그대로 지나치는 현대인들의 무심함과 비인간적인 면을 토로하고 있다. 마치 홀로 비를 맞고 서있는 사람에 대하여 지나치는 것과 같이.
* ‘어스름 차창에 서리는 비로 회색빛 유리창에 어리는 아련한 불빛들’들에서 전차 차창에 흘러내리는 비에 오버랩되어 비치는 가물가물한 불빛으로 비치는 건물과 신호등, 사람등 차창넘어 바깥세계의 풍경이 마치 자신의 눈을 통하여 비치는 흐릿하지만 가물거리는 영상인양 그대로 눈에 들어오는 것을 그리고 있다. 흘러내리는 비로 차창에 비치는 근대화의 존재는 그의 눈에 누려야할 고마운 존재라기 보다 허무함과 외로움, 이에 대하여 어쩔 도리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무기력함을 하나의 그림속의 풍경으로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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