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陽明學), 유교사상의 또다른 흐름

1. 성리학과 다른 유교사상인 양명학 ( 陽明學 )   양명학 ( 陽明學 ) 은 중국 명나라 학자인 왕수인이 설파한 유교사상입니다 . 양명학 ( 陽明學 ) 이란 명칭이 붙여진 것은 왕수인 ( 王守仁 ) 의 호가 양명이라는 착안하여 붙여진 것입니다 . 양명학은 주희가 설파한 성리학에 대비되는 유교사상으로서 중국 명나라 , 청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성리학 일변도인 조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양명학은 일본으로 건너가 에도막부시절과 메이지유신에 사상적 기반으로 되었습니다 .  양명학 ( 陽明學 ) 이 주희의 성리학 ( 性理學 ) 과 대비되는 차이점은 주희가 주창한 격물치지 ( 格物致知 ) 가 우주를 이루는 외부의 만물에 존재하는 근본이치를 탐구하고 이해하여 사물에 대한 완전한 지 ( 知 ) 의 상태에 이르기 위한 독서와 탐구 , 이를 이행하기 위한 끊임없는 도덕적 수행들을 통하여 완전한 지 ( 知 ) 를 이루는 성인에 이른다고 하는 반면 양명학 ( 陽明學 ) 은 인간은 외부의 사물과 관련없이 타고 나면서 누구나 도덕적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심즉리 ( 心卽理 ) 를 주창하였습니다 .  사람의 마음이 바로 이치라는 의미로 사람의 마음이 우주만물 , 세상의 이치라고 하였습니다 . 이에 사람의 이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인식한다면 세상의 이치를 사람의 마음이외 외부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 이에 양명학은 양지 ( 良知 ) 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  양지 ( 良知 ) 는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부여된 도덕적 본성과 이를 이해하고 판단하며 선악을 구별하고 실철하는 능력으로 사람은 타고날 때부터 누구나 양지 ( 良知 ) 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 타고난 양지 ( 良知 ) 를 제대로 보존 , 이행하고 양지를 흐리게 하는 마음속 사리사욕을 버리는 치양지를 할 때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고 하였습니다 .   2. 치양지 ( 致良知 ) 와 지행합일   양명학 ( 陽明學 ) 은 사람은 선천적으로 타...

한국의 대표적 모더니즘 시 :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The Sea and the Butterfly)

1.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과 김기림의 시 세계

 

김기림은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서구에서 일고 있는 문예사조인 모더니즘과 이미지즘을 받아들여 그 나름의 시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미지즘은 작가가 대상인 사물 Objet를 작가 자신의 감정, 인식, 관념, 추상적인 언어등을 배제한 체 언어를 매개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작법입니다. 마치 하나의 영상스크린에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여 사물을 그대로 옮기는 촬영기법과 같습니다. 물론 영상스크린에 나타나는 영상이 촬영자의 촬영기법, 각도, 클로즈업, 편집정도에 따라 촬영자, 편집자의 의도와 관념이 삽입될 수 있지만 그러한 주관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여 사물을 캔버스에 묘사하는 것입니다. 김기림이 1940년대 발표한 바다와 나비에서 사용한 작법의 문예사조가 1930년대 미국등에서 일기 시작한 Ezra Found등이 주도한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Ezra Found가 창작한 시 지하철에서(In a Station of Metro)’에서 보듯 작가의 철저한 주관적 관점을 배제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image를 그림그리듯,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하듯 그대로 언어로 옮기는 작업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김기림은 이러한 시대흐름에 따라 그의 의식도 이에 맞추어 그의 시 세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김기림의 주지주의적, 이미지즘의 시세계는 영미의 사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1930년대 한국의 당시로 보아 영미등과 현재와 같이 직접적인 왕래, 지적인 접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당대 지배적인 문예사조를 차용한 것에 놀랍습니다. Ezra Found가 창작한 시 지하철에서(In a Station of Metro)’에서 1930년대 미국사회에서의 전쟁으로 인한 피폐해진 생활상을 그리고 있는 것과 같이 김기림은 이러한 이미지즘 작법을 활용하여 그가 살고 있던 1930년 한국이 처한 상황을 언어를 매개로 한 시의 형태로 시대상을 그리며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소시민들이 겪고 있는 좌절감들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로서 김기림은 한국근대문학사에서 모더니즘을 확립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에서 나타난 나비와 바다의 이미지

 

바다와 나비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나비는 그가 처하고 있는 환경을 벗어나 거대하고 푸른 꿈을 이루기 위하여 항상 푸른 바다를 동경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가 동경하는 푸른바다는 나비가 그의 푸른 꿈을 이룰 수 있는 엘도라도, 지금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이상향으로 설정되고 있습니다. 흰나비는 항상 그가 꿈꾸든 이상향으로 가기를 희망하며 때가 되면 바다라는 이상향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비는 외형적으로 보기에 푸르른 바다가 주는 무서움을 모르고 있습니다. 작가는 푸른 바다가 얼마나 위험하고 험난한 곳인지를 푸른 바다의 수심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다의 수심이 깊을수록 그 아래 심연에 어떠한 존재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위험한 존재와 다양한 난관이 푸른 바다에 갈수록 그에게 닥쳐오리라는 것을 나비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푸른 바다가 그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심에 따른 어려움과 난관들에 대하여 나비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싯구사이에 풍기는 행간 의미로 나비는 비록 어렴풋이 이를 안다고 하여도 나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이를 알고도 모른체 할 수도 있습니다. 1930년대는 미국과 같이 비록 식민지 시절이지만 한국에서도 소시민사회가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소시민들은 그가 가진 직장과 거기에서 나오는 얼마만큼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1940년대를 살았던 작가는 당시 소시민사회에서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생활상을 바다와 나비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가 보기에 당시 소시민을 나비로 비유하여 그들의 삶을 다소 안타까운 심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소시민의 꿈을 나비의 꿈으로 대비하여 나비가 항상 푸른 바다를 동경하듯이 소시민이 항상 풍요로운 엘도라도, 이상향을 꿈꾸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나비가 푸른바다의 수심이라는 깊이와 위험을 모르듯이 소시민 또한 엘도라도, 이상향이 품고 있는 위험을 모릅니다. 알려고 하지 않을지수 있습니다.

 

3. 나비의 꿈을 이루기 위한 험난한 여정

 

푸른 바다를 동경하는 나비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나비는 그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지만 안락한 둥지를 떠나 푸른 바다가 청 무밭과 같은 곳인가 해서 내려갑니다. 그러나 나비가 향하여 내려간 곳이 청 무밭인 곳으로 알고 있었지만 물결이 이는 곳이었던 곳입니다. 나비는 비가 내리면 날개가 젖어 날지를 못합니다. 나비가 청 무밭인가 해서 신나게 날개짓하며 내려간 곳이 물결이 이는 곳이라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어 그의 꿈을 펼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되돌아 옵니다. 마치 세상의 험난함을 겪지 못하고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귀엽게만 자란 공주마냥 풀에 지쳐서 돌아옵니다. 작가는 나비로 묘사한 당시 소시민들이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험난한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갔다가 미쳐 예기치 못한 험한 난관을 맞아 지쳐서 그의 자리로 다시 몰아오는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나비가 물결에 날개가 젖으면 날지를 못하듯이 소시민도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면 더 이상 어찌하지 못하는 상태로 되는 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있던 그 자리로 돌아와 그들의 삶을 그대로 영위하여야만 하는 안타까움에 작가는 소시민들이 겪는 성공의 사다리, 계층상승의 사다리에서 겪는 좌절을 나비가 물결에 그의 날개가 젖음을 통하여 소시민들의 좌절을 그리고 있습니다.

 

4. 좌절된 나비의 꿈과 초승달
 

나비는 푸른바다가 간직하고 있는 수심을 알기도 전에 바다로 다가가는 도중 일고 있는 물결에 그의 날개가 젖어버리는 사고를 당하여 도중에 좌초한 상태입니다. 나비는 그의 꿈인 푸른바다를 포기한 것일까요. 나비가 그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의 꿈인 푸른바다에 가지 못함에 변명아닌 변명을 할까요. 나비는 말이 없습니다. 나비가 그의 꿈을 포기한 것인지 포기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소시민들이 그들이 꿈을 이루기 위한 시도가 예기치 않은 난관으로 인한 좌절에 그들의 꿈인 엘도라도를 포기한 것인지, 포기하지 않지만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 것인 알 수 없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소시민들의 상태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비가 그의 꿈, 소시민이 그들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를 가져다 준 원인으로 작가는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비가 세상에 나와 활동하는 시기는 따스한 봄 햇빛이 내리쬐고 만물이 생동하는 춘삼월입니다. 청 무우밭과 같이 나비가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바다에는 춘삼월에는 나비가 활발히 날아다닐 수 있는 꽃이 피는 곳이 아닙니다. 나비가 세상에 나와 그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푸른바다에는 그가 활동할 장소가 되지 못함을 작가는 말합니다. 이는 소시민들이 그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상황이 아님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해방이후 어려운 시절 살았던 소시민이 혼란한 시기 그들의 꿈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작가는 이러한 안타까움을 서글픈 나비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나비가 그의 꿈을 펼치지 못함에 나비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인 낮을 지나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 하늘에 뜬 초승달이 나비를 처량하게 비치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보기에 사회의 소시민들이 그들의 꿈을 항햐어 올라가려는 노력들이 신분상승의 사다리 중간에서 좌절하고 있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어진대로 살아가고 살아가야만 하는 소시민들의 존재를 그대로 보여줍니다.